금성대군 가계도: 세종과 단종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진 세종대왕의 직계 자손이자, 어린 조카 단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신의를 지켰던 인물이 바로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입니다.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세조)이 권력을 잡았을 때 대부분의 종친과 신하들이 권력에 야합하거나 침묵한 반면, 금성대군은 끝까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되었습니다. 금성대군의 생애와 그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조선 전기의 얽히고설킨 왕실 인맥과 함께 세종-문종-단종으로 이어지는 적통에 대한 그의 깊은 충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직계 부모

  • 부친: 세종대왕 (조선 제4대 국왕)

  • 모친: 소헌왕후 심씨 (청천부원군 심온의 딸)

  1. 형제자매 관계 (소헌왕후 소생 직계)

  • 첫째 형: 문종 (이향, 조선 제5대 국왕)

  • 둘째 형: 세조 / 수양대군 (이유, 조선 제7대 국왕)

  • 셋째 형: 안평대군 (이용)

  • 넷째 형: 임영대군 (이구)

  • 다섯째 형: 광평대군 (이여)

  • 일곱째 동생: 평원대군 (이림)

  • 여덟째 동생: 영응대군 (이염)

  • 누이: 정소공주, 정의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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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은 큰형인 문종과 조카 단종을 잇는 적통 라인에 깊은 애정을 가졌으나, 둘째 형인 수양대군과는 단종 복위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 부인 (완산부부인 전주 최씨)

  • 부인: 완산부부인 전주 최씨 (좌의정 증직 최사강의 딸)

  • 완산부부인 최씨는 당대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세종대왕 왕실과의 중첩된 사돈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1. 자녀 및 후손

  • 적장남: 함종군 이맹한 (咸從君 李孟漢)

    • 완산부부인 최씨 소생의 아들로, 충주 지씨 지범의 딸과 혼인하여 동평군 이연장 등의 후손을 두었습니다.

  • 서장남: 함원군 이동 (咸原君 李銅)

    • 첩실 소생으로, 금성대군 처형 이후 가문이 연좌될 때 관노로 전락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금성대군이 사사된 1457년(세조 3년) 이후 그의 가족들과 자손들은 종친록과 유부록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으며, 영조 및 정조 대에 이르러서야 관작이 복구되고 정민공(貞愍公)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1. 단종과의 관계

  • 단종(이홍위)은 금성대군의 큰형인 문종의 외아들이자 세종대왕의 적손입니다. 따라서 금성대군에게 단종은 친조카가 됩니다.

  • 세종과 문종이 연이어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은 계유정난(1453년)을 일으켜 안평대군과 김종서 등을 제거하며 권력을 잡았습니다.

  1. 단종 복위 운동과 순흥 유배

  • 금성대군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며 단종 수호에 앞장섰습니다. 이로 인해 삭탈관직되어 순흥(현재의 경상북도 영주)으로 유배되었습니다.

  • 유배지에서도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영남 지역의 선비들과 군사를 모아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밀고로 인해 사전 적발되었습니다.

  • 이 사건으로 금성대군은 1457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유배되어 있던 순흥부는 도호부에서 현으로 격하되는 풍파를 겪었습니다.

훗날 숙종, 영조, 정조 대에 이르러 금성대군의 충절이 재평가되면서 장릉(단종의 능) 배식단에 배향되었고, 그가 피를 흘린 영주 순흥 지역에는 금성단이 설치되어 오늘날까지 그의 숭고한 충의를 기리고 있습니다. 금성대군의 가계도는 단순한 왕족의 족보를 넘어, 조선 초기 단종을 향한 지고지순한 충절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